韩国文学可分为古典文学和现代文学,今天为大家分享的是“韩语文学:日落西山03 — 李文求”,一起来感受韩语文学之美吧!
일락서산03 — 이문구日落西山03 — 李文求
나는 맨 먼저 할아버지 산소부터 성묘를 해야 예의라고 믿고 있었다. 할아버지 산소는 한내에서 40여 리 밖인 고만(高巒)이란 갯마을 연해의 종산(宗山, 한 문중의 조상을 모신 산) 한 기슭에 외따로 모셔져 있었다. 하루 한 차례의 버스편마저 없는 곳이라 천상 걷기로만 해야 하되 가며오며 한대도 하룻길로는 벅찬 곳.我想首先应该给爷爷扫墓才行。爷爷的墓孤零零坐落沿海的宗山脚下,那是离村子40多里外一个叫高峦的河边村庄附近。那里一天连一趟公共汽车也没有,只能一路走着去,而且来回一整天时间也不够。
도착한 날은 도리 없이 읍내에서 묵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었다. 비록 고향을 등진 지는 오래였지만, 며칠쯤 묵는대서 흉허물이 될 집은 없었다. 나는 읍내 군청 관사에 살고 있던 외척을 찾아 유숙처로 내정했다. 그런 뒤로 해전(해가 지기 전)을 뜻 없이 보낼 일이 따분하여 갈머리를 찾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뛰놀며 성장했던 옛 터전들을 두루 살피되, 그 시절의 정경과 오늘에 이른 안부를 알고 싶은 충동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 계기였다. 비단 엉뚱하고 생소하게 변해 버려 옛 정경, 그 태깔(모양과 빛깔)은 찾을 길이 없다더라도 나는 반드시 둘러보고, 변했으면 변한 모양새만이라도 다시 한 번 눈여겨 둠으로써, 몸은 비록 타관을 떠돌며 세월할지라도 마음만은 고향 잃은 설움을 갖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所以到达的当天不得不在邑内住一宿。虽然离乡已经很多年了,但在别人家借住几天应该不会见外。我把住在邑内郡政府机关宿舍里的外亲家定为留宿处,然后决定去一趟冠村。这可不是因为天黑前时间多得无聊,而是想四处看一看我过去玩耍过成长过的老基地,想回首当年的情景,以及看一看时至今日这些是否都安然无恙。这份无法抑制的冲动是唯一的理由。昔日的情景已变得出乎想象而又陌生。不过即使根本找不出当年的样子和颜色,我也一定要四处看一看。就算已经变了,也要把改变了的模样再仔细看一遍。这或许是因为我虽然长期在异乡流浪,却从内心里拒绝失乡的悲哀吧。
나는 역전 거리로 나서자마자 비닐 우산부터 장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두둑우두둑 우산 위에서 들린 빗낱 듣던 소리는, 점심마저 굶어 허당이 된 가슴 속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분명한 가락으로 두들겨 주고 있었다.我刚刚走上站前马路时,不得不准备塑料雨伞了。笃笃地打在雨伞上的雨点声,越来越节奏分明地敲打我饥饿的胸膛。我连午饭都没来得及吃。
갈머리는 일테면 한내읍 교외로서 읍내 복판에서 보통 걸음으로 10분이면 닿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冠村可以说是汗乃邑的一个郊区,从邑中心用普通的步伐,走上10分钟左右就能到了。
마을 동구 앞에는 조갑지(조개) 같은 초가 세 채가 신작로를 가운데로 하여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한 채는 눈깔사탕이며 엿과 성냥을 팔던 송방(松房)으로 불리운 구멍가게였고, 주인은 술장수 퇴물인 채씨 부부였다. 그 맞은편 집은 사철 풀무질이 바쁘던 원애꾸네 대장간이었으며, 그 옆으로 저만치 물러나 있던, 대낮에도 볕살이 추녀끝에서만 맴돌다 가 어둡던 옴팡집은 장중철이네가 차린 주막이었다.村口马路两边有三家像贝壳似的茅草屋隔路相望。一家卖龙眼糖、麦芽糖和火柴的小铺子名叫松房,主人是曾经干过卖酒生意的蔡氏夫妇。对面一家是一年四季忙着拉风箱的元瞎子的铁匠铺。离铁匠铺有一段距离,有一家凹陷进去而且又黑又暗的窝棚,即使大白天,阳光也只能照到屋檐。这是张中哲一家开的酒铺。
부엌은 도가(도매상) 술에 물 타서 느루(늘) 팔던 술청이었고, 손바닥만하던 명색 마당 귀퉁이는 이발 기계와 면도 하나로 깎고 도스리던, 장에 가는 장꾼들만 바라보던 무허가 노천 이발소였다. 주막과 대장간 어중간에는 사철 시커멓게 그을린 드럼통 솥이 걸리어 있어, 장날마다 싸잡이 나무를 때어 끓이면서 장으로 들어가는 옷가지나 바랜 이불잇 따위를 염색하던, 검정 염색터가 전봇대 밑에 웅크리고 있게 마련이었다.厨房成了在批发来的酒里兑水稀释后出售的店堂。巴掌大的院子幽暗的角落里,摆着理发机械和一把剃须刀。这里是只有赶集商贩才会光顾的无照经营的露天理发店。酒铺和铁匠铺中间的电线杆底下,一年四季挂着一只已熏得焦黑的铁桶。这是黑色染色场,每当赶集日的时候,烧一把干树枝烧开水,给进入集市的衣料或褪色的被面之类布料染色。
그러나 이제는 어느 한 가지도 그전 그 모습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송방은 헐고 새로 이은 밝고 시원한 이발소로 변해 처마에 ‘관촌 이발관’이라는 문짝만한 간판이 올라 있었고, 원애꾸네 대장간 자리에도 붉은 기와의 오죽잖은 블록 집이 대신 들어서 있는데, 아마 국민 학교 선생이나 군청 계장쯤 된 사람이 지어 사는 살림집인 것 같았다. 장중철이네 움막도 지붕을 슬레이트로 개량했고, 판자 울타리는 시퍼런 페인트를 발랐던 시늉만 낸 채로 ‘반공 방첩’ 표찰과 분식 장려 담화문이 붙어 있었으며, 곁들여 인두판만큼 기름하고 좁은 널빤지에 되다 만 먹글씨로 ‘천일 양조장 제13구역 탁주 위탁 판매소’라는 상호를 내걸고 있었다.如今再也找不到一丁点儿原来的模样了。松房已经被拆掉重新修建,变成了一个宽敞明亮的理发店,屋檐下还挂着门面大小的牌子――“冠村理发店”。元瞎子家铁匠铺的位子,也被一个红瓦砌房代替了。看起来像是小学教师或郡厅的系长级的人物盖的住房。张中哲家的窝棚也把屋顶换成石棉瓦,木板围墙上简单刷了一下绿油漆,贴上“反共,防谍”的告示牌和奖励面食的口号。而且在一块熨衣板一样窄长的板子上,用墨水写着“天日酿酒厂第13地区米酒代销处”的商号。
이발관 유리창을 뚫고 나온 난로 함석 연통에서는 보얀 연탄 가스가, 끓는 소댕(솥뚜껑)에 김 서리듯 부실거리고, 낯선 얼굴 두엇이 무심찮은 눈으로 나를 살펴보며 서성거리고 있었으나, 내가 알아볼 만한 얼굴은 단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온 동네를 바깥마당으로 여기며 18년 동안이나 산 토박이가 이토록 나그네 같은 서툰 몸짓밖에 취할 수 없단 말인가. 진실로 서글픈 일이었다.一根铁皮烟囱穿过理发店的玻璃窗伸出来,冒出灰白的烟气,像是从沸腾的锅里升起的雾气般缭绕着上升。虽然还有两三个陌生的面孔漠然地打量我,但找不到一个我能认识的脸庞。曾经把整个村子当作自己家的外院一样玩耍,在这里土生土长了18个年头,我难道只能像个旅客一样这般陌生吗?真令人悲哀。
나는 이윽고 신작로가 나뉘면서 검붉은 황토를 드러낸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섰다.不一会儿,我拐进了马路岔路口一处露出黑红黄土的狭窄胡同。
몇 걸음 안 가서 이내 과수원이 나왔다. 이제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곱은탱이만 돌아가면 철철이 선대의 손길이 닳아지고, 사변 이듬해부터는 여러 가지 푸성귀와 그루갈이를 내 손으로 직접 거두어 먹다가 집과 함께 모개흥정(함께 몰아서 하는 흥정)으로 처분하고 떠났던, 팔백여 평의 터앝(집의 울안에 있는 작은 밭)의 나타날 숨가쁜 길목이었다.没走几步,很快出现了一片果树园。再绕过枸橘树做的篱笆,就是一处令我呼吸急促路口。祖先们曾经随着时令耕耘过的、事变[9]第二年开始我也曾经亲手耕种和收割过各种青菜的、再后来经过讨价还价跟房子一块儿卖掉的那八百多坪宅旁园地,就要出现在眼前了。
词 汇 学 习
과수원:果园。
산언덕 위에 과수원이 하나 있다.
山冈上有一个果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