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의 식물 연구] 멘델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식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멘델이 지냈던 수도원 뒤에는 건물의 벽을 따라 길쭉한 밭이 있었다. 너비 7m, 길이 35m의 그 좁은 땅은 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그 밭에는 파란 잎사귀에 귀여운 꽃이 핀 여러 가지 완두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흰꽃과 보라색 꽃이 핀 것, 키가 큰 것과 작은 것, 살이 찐 콩꼬투리가 달린 것과 씨 사이가 잘록하게 들어간 콩꼬투리가 달린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멘델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 밭의 식물을 관찰하였다. 멘델은 아직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벌렸다. 그리고 수술을 떼어 낸 뒤 다른 꽃의 수술에서 가져온 꽃가루를 암술에 뿌린 다음, 종이 봉투나 헝겊으로 그 꽃들을 하나하나 싸 나갔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멘델은 이 밭에서 많은 실험을 계속하였고, 방에 돌아와서는 때마침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과 전부터 확실하다고 알려진 여러 가지 학설들을 비교하며 공부하였다.
[유전 법칙의 발견] 멘델은 밭에서 얻은 새로운 품종들을 잘 조사하여 부모에서 자식으로, 그리고 자식에서 손자로 어떤 성질이 유전되는지 또 그들 사이에 어떤 정해진 규칙이 있는지를 연구해 보았다. 1865년 마침내 그는 유전의 법칙을 발견하고, 브륀(지금의 체코 브르노)의 자연 연구회라는 모임에서 이틀 동안 그것을 발표하였다. 제목은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것이었다. 그 모임에는 40명쯤 모였지만 그의 연구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빛을 보지 못한 멘델의 연구 결과] 멘델은 자신이 발견한 유전 법칙을 정리하여 논문을 쓰고 이를 40부 가량 인쇄하여 유럽의 유명한 과학자들에게 보냈다. 그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었으나 아무도 회답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델은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곧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얼마 뒤 브륀의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 후로 유전 현상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였으나 1884년 4월 6일에 만성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멘델 법칙의 재발견] 멘델이 죽은 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생물의 진화와 유전에 관한 연구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1900년경 네덜란드의 유전학자인 드브리스와 독일의 생물학자인 코렌스,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인 체르마크 등이 완두콩이나 다른 식물로 실험을 하여 멘델의 법칙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십 년 전에 멘델이 이미 연구해 놓은 것에 대한 확인에 불과했다. 이것을 멘델 법칙의 재발견이라고 한다. 멘델의 이름은 이렇게 해서 온 세계에 알려졌다. 얼마 뒤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이 실현된 것이다.
[더 알아보기-유전자의 성질] 키가 큰 유전자를 가진 완두라도 비료가 적은 땅에 심으면 크게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키가 크다든가 작다든가 하는 등의 형질(사물의 생긴 모양과 성질) 비교는 똑같은 조건의 땅에 심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생물의 형질은 어버이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그 생물이 자라고 있는 환경의 두 가지가 관계되어 정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생물에 적용된다. 비료가 많은 땅에서 잘 자란 완두라도 키가 작은 유잔자를 가진 것이라면 그 자손이 키가 큰 성질을 가지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하면 생물이 태어난 후 환경 변화에 의해 생긴 형질은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유전자는 성질이 바뀌지 않고 어버이에게서 자식으로 전해지는 특징이 있다.
[더 알아보기-유전 연구에 쓰이는 생물] 유전 연구에 쓰이는 생물은 일반적으로 키우기가 간편하고 한 세대가 짧아서 유전의 결과를 쉽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자손을 많이 퍼뜨려 돌연변이 종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좋다. 연구에 많이 쓰이는 등물들로는 초파리, 누에, 생쥐, 닭 등을 들 수 있으며 식물로는 옥수수, 나팔꽃, 밀, 토마토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미생물로서 곰팡이, 효모, 세균 등도 잘 쓰인다.
[멘델의 식물 연구] 멘델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식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멘델이 지냈던 수도원 뒤에는 건물의 벽을 따라 길쭉한 밭이 있었다. 너비 7m, 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