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이전의 생애]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니콜라이 코페르니크이었다. 그는 그 무렵의 학자들이 흔히 하던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라틴 말로 고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로 하였다. 10세 때쯤 아버지를 여읜 코페르니쿠스는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후 그는 알프스의 북쪽에 있는 크라쿠프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 대학에서 그는 천문학과 수학을 배웠고, 다른 여러 지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39세 되던 해인 1512년에는 프라우엔부르크 성당의 신부가 되었다. 얼마 후에는 그 당시 문화가 가장 앞선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서 볼로냐 대학에 들어갔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볼로냐 대학에는 유명한 천문학자 노바라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공부하였다. 노바라는 그 전부터 지구 중심설(천동설)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친한 사람들에게 곧잘 지동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노바라의 영향을 받은 코페르니쿠스는 볼로냐 대학에서 3년간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고, 천체 관측법을 완전히 익힌 후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는 월식을 관찰하고 때로는 학교에서 수학을 강의하며, 지동설로 천제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다시 파도바에 가서 의학과 수학을 공부한 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10여년 동안의 이탈리아 유학 생활을 통해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에서는 배우기 힘든 것들을 공부할 수 있었다.
[지동설]행성 중의 하나인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는 우주관으로, 태양 중심설이라고도 한다. 150년경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제안되었던 천동설은 중세까지 거의 1400여 년간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존속되었다. 그 후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출판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확실한 증거를 들어 지동설의 이론을 설명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으로부터 가까운 순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의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각 행성은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태양 주위를 원운동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천문학의 기원과 역사] 우주 천체에 관하여 연구하는 천문학은 본래 생활의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양, 달, 항성 등의 주기적인 현상으로부터 계절의 변화와 순환을 알아냈다. 또한, 농업에 필요한 달력을 만드는 일은 제왕의 주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제왕은 천문학자들의 전문 지식을 이용하였다. 또 동양에서는 일식(달이 태양의 일부나 전부를 가리는 현상)이 제왕의 큰 관심을 끌었으므로 예보에 힘쓰기도 하였는데, 예보가 틀리면 천문관이 문책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학 이전의 생애]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니콜라이 코페르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