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트와 로벅의 만남] 글래스고 대학의 블랙 교수는 와트가 응축 장치의 모형을 만들 때에도 실험 비용이 모자라면 돈을 빌려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후 와트…
[와트와 로벅의 만남] 글래스고 대학의 블랙 교수는 와트가 응축 장치의 모형을 만들 때에도 실험 비용이 모자라면 돈을 빌려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후 와트는 블랙 교수의 소개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이름 있는 광산업자인 존 로벅(1718~1794년)을 알게 되었다. 로벅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탄광의 물을 퍼내는 일로 고민하고 있었고, 와트의 고안이 훌륭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와트가 하는 일을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그래서 와트는 측량 일을 하면서도 증기 기관을 개량하는 문제를 계속 연구할 수 있었다. 그는 진짜 기관을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그 당시는 아직 공작 방법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애써 만든 실린더에서는 증기가 새고, 응축 장치도 고장이 나기 일쑤였다.
[와트와 로벅의 공동 연구] 응축 장치 모형을 만든 지 3년째 되던 1768년에는 측량 일이 한가해져서, 증기 기관에 관한 새로운 설계도 하고 실험도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로벅은 와트와 함께 증기 기관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해 가을에 로벅의 공장에서는 와트가 설계한 기관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와트는 그것을 개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피스톤과 실린더 사이에서 증기가 새지 않도록 베로 만든 패킹(틈새 따위에 물이나 공기가 새지 않도록 끼워 넣는 물건)을 써 보기도 하고, 피스톤에 끊임없이 기름을 쳐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응축 장치에는 수은 압력계를 써서 그 안의 진공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내는 방법도 연구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실용적인 증기 기관을 완성하여 1769년 1월 특허를 얻었다.
[와트의 새 후원자 볼턴] 로벅은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와트를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로벅을 대신해서 도와주겠다는 사업가가 나타나서 와트는 계속 발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매튜 볼턴(1728~1809년)이라는 사람으로, 영국 중부 웨스트민스터 시의 소호라는 곳에서 큰 금속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 공장에서 만든 물건은 유럽 각지에 널리 팔려 나가고 있었다. 볼턴은 눈앞의 돈벌이만을 생각하는 장사꾼이 아니었다. 그는 좋은 설비로 와트가 발명한 기관을 잘 만들어 보려고 했다. 볼턴은 와트를 격려해 주었고, 와트의 빚을 다 갚아 주는가 하면 발명과 연구에 필요한 비용도 충분히 내주었다.
[로벅] 로벅은 영국의 화학 기술자이다. 에든버러 대학과 레이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버밍엄에서 개업하였다. 그러나 화학 연구에 빠져 보석 부스러기에서 금과 은을 회수하는 실험실을 만들어 연구하다가 황산 제조법에 주목하게 되었다. 1746년 연실(납판으로 둘러싼 큰 상자, 황산을 만드는 데 이용됨)을 발명하여 이를 사용한 연실법으로 황산 제조 원가를 절감하는 데 기여했다. 1749년 황산 공장을 세운 외에 1760년에는 스코틀랜드 최초의 대제철소를 건설하여 제철 방법도 개량하였다. 또 와트의 증기 기관 제작을 원조하였으나, 1773년 기업의 파산으로 와트와의 계약을 볼턴에게 양도(재산이나 물건, 법률에서의 지위 등을 남에게 넘겨 줌)하였다.